2016년 개봉한 아가씨(The Handmaiden)는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이 절정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원작으로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바꾸면서 한국적인 색채를 강하게 부여했다.
특히 아가씨는 서사, 연출, 미장센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감각적인 색감, 대담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설계한 스토리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준다. 이번 글에서는 아가씨가 지금 봐도 대단한 이유를 연출, 미장센, 그리고 서사의 측면에서 심층 분석해 본다.
박찬욱 감독 스타일의 절정
아가씨의 촬영 기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원근감을 활용한 화면 구성이다.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문, 창문, 가림막 같은 프레임들은 인물의 심리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히데코(김민희)가 이모부에게 학대를 당할 때 그녀를 프레임 안에 가두듯이 촬영하는 방식은 그녀의 억압된 상태를 강조한다. 반면, 영화 후반부 히데코와 수키(김태리)가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열린 공간과 부드러운 조명을 사용해 자유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은 롱테이크(long take)와 클로즈업(close-up)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감정을 극대화한다. 롱테이크를 통해 긴장감을 높이고,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전달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히데코가 수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카메라는 천천히 줌인하며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한다. 이 장면은 후반부의 강렬한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대비하는 장치로 작용하며, 서서히 쌓여가는 감정을 관객이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비대칭적인 구도는 불안정한 권력관계와 감정의 흐름을 암시한다. 초반부에 히데코가 이모부(조진웅) 앞에서 작아 보이도록 프레임의 구석에 배치된 반면, 후반부에서는 그녀가 중심에 서면서 힘을 되찾아가는 구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섬세한 구도 변화는 단순한 미학적 요소를 넘어, 서사의 흐름과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연출 기법이다.
미장센: 시대와 감정을 담아낸 색채와 공간
영화에서 색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키가 속한 하층민의 세계는 따뜻한 색감(갈색, 붉은빛)이 강조되며, 히데코가 사는 저택은 차갑고 정적인 색감(푸른빛, 회색)이 주를 이룬다. 특히 히데코가 입는 옷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초반에는 차가운 색상의 드레스를 입지만, 수키와 가까워지면서 따뜻한 색상의 의상으로 변한다.
수키 또한 영화 초반부에는 어두운 색조의 하녀복을 입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밝은 색의 의상으로 변하며 그녀가 속박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히데코가 사는 저택은 곧 그녀의 감옥이다. 일본식 정원과 서양식 건축이 혼합된 이 저택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이다. 계단과 복도는 권력관계를 암시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모부의 서재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은 그가 히데코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존재임을 상징한다. 반면, 수키와 히데코가 사랑을 나누는 방은 상대적으로 아늑하고 부드러운 조명으로 표현되어 둘만의 세상을 상징한다.
대비되는 두 세계를 색감으로 표현하고 히데코의 갇힌 세상과 두 사람의 탈출을 아름답게 연출한 공간의 활용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2024년 현재 다시 봐도, 아가씨는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적 가치를 지닌다. 이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억압된 사회에서 자유를 쟁취하는 이야기이며, 미학적 완성도와 서사적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걸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성 중심 서사와 권력 전복
영화는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첫 번째 파트는 수키의 시점에서, 두 번째 파트는 히데코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마지막 파트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구조는 기존의 단선적인 내러티브를 깨고,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박찬욱 감독은 여성 캐릭터들이 능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초반부에 히데코는 수동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점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수키 또한 단순한 하녀가 아니라,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캐릭터다.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점점 무력해진다. 후지와라(하정우)는 자신이 계획한 계략이 역으로 당하는 입장이 되고, 이모부는 결국 권력을 잃고 몰락한다. 이는 영화가 기존의 가부장적 권력을 전복하고, 여성 캐릭터들의 연대와 해방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 파트로 나뉜 독창적인 내러티브로 말하는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과 권력 전복의 서사는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아가씨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치밀한 연출과 강렬한 미장센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박찬욱 감독은 대담한 카메라 워크와 섬세한 색채, 공간 활용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영화를 완성했다. 또한, 기존의 성 역할을 뒤집고 여성 캐릭터들에게 주도권을 부여하는 서사는 지금도 많은 영화에서 참고하는 요소다.